이화여대 엑스퍼트 < 시소 展 >

시소

김명교

’보다’ 와 ‘감상하다’
우리는 전시를 보는가 아니면 감상하는가

작품은 응시의 대상인가 아니면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존재인가

시소는 어릴 적 기억의 한편에 꼭 자리하고 있는 하나의 놀이기구이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서 서로의 무게감을 경험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지속되지 않는 균형을 목격하고, 수평 맞추기 놀이를 하지만 결국에는 한쪽으로 치우고, 어느 쪽도 영원한 승자가 없는 놀이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시소를 통해 응시하는 법을 배우고 함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영원하지 않은 위계질서를 체득한다.
또한 영어로 시소는 ‘보다’의 see와 ‘보았다’의 saw로 이루어져있다. “see-saw”의 어원은 양쪽에서 한 사람이 당기고 다른 한 사람이 미는 모습에서 유래하여 ‘영차’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의태어로서 처음 기록되었다. ‘보다, 보았다(see-saw)’는 마주보며 일하는 과정 속 어느 쪽으로도 힘이 기울지 않고 영원하지 않는 모습에서 탄생한 단어이다. 그 뿌리에서부터 시소는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각자의 진영에서 힘 겨루기 하며 수평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놀이이다. 그 외에도 스포츠 경기에서 적은 점수차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접전하는 게임을 ‘시소게임’이라 명명한다. 이를 통해, 시소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진 강조점을 두지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전시회를 가고 작품을 관람할 때 단방향적인 자세를 취한다. 우리는 작품을 보는 주체적 입장이고, 작품은 보여지는 대상이라 여기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과연 작품이 응시의 대상이라 온전히 말할 수 있는가. 작품도 분명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수많은 시각적 언어를 통해 관람객들을 마주하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작가의 언어를 대변하는 것일지라도 관람객을 직접 대면하는 것은 작품이며 그 자체로 주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작품들은 작가를 대변하면서도 어떤 대상이 아닌 우리와 동일하게 우리 앞에 존재하는 하나의 비언어적 주체이다. 우리는 전시를 관람하면서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하나의 주체적 존재로서 작품을 대하게 한다. 응시의 대상이 아닌 주체적 바라봄의 존재로 인식하고 전시를 통해 자연스레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 힘겨루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시소를 타며 경험하는 것과 같은 영원하지 않는 위계질서를 체득하는 또 하나의 경험이 될 것이다.

본 전시를 통해 조금 다른 전시 관람을 제시하고자 한다. 관람객들은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중립적일 수 없는 자세를 취할 것을 부탁한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때로는 수평적이지만 수평적일 수 없는 균형감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과정을 놀이로 인식하며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시소를 타는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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